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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가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당신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가?
포털의 까페에서 부자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까페와 스터디그룹들이 자리잡고있고 온라인 서점에서 부자나 재테크라는 단어를 쳐보면 그만큼이나 많은 수의 책들이 있다.
신문의 경제면을 열심히 읽고, 재테크 책을 보고, 강연을 들으면서, 구루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하는가?
만약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당신은 영원히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
사실 진짜 부자가되는 사람은 스스로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없다.
부자가 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고 그 결과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당신이 보쌈집을 하건 라면집을 하건 당신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투자수단은 바로 당신이 몸담고 있는 영역이다.
인간은 한가지 영역에 집중 할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김포공항에서 구두를 딲는 분의 손놀림을 보라. 그는 손님을 모아오는 일부터, 구두를 배달하는 일에서 출발해서 결국 구두를 딱는 일에 일등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구두를 잘 딲기 위해서는 구두약을 바르고 불에 그을려도 보고 뜨거운 물을 한방울 묻려보기도 하고 입김을 불러오기도 했을 것이다.
간고등어로 유명한 간잽이 이동삼씨를 보라 그는 평생을 고등어 배에 소금을 뿌리는 일을 했을 뿐이다.
그가 오른손으로 뿌리는 소금은 왼손에 잡아든 고등어의 무게에 따라 양이 미세하게 달라지고, 그래서 그가 간을 한 고등어는 그것이 크던 작던 일정한 염도를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일등을 했을 것이다.
같은 보쌈집에서도 매일같이 새로운 재료를 넣고 고기를 삶아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과, 원래부터 하던 방식대로 평생을 해온 사람의 결과는 다르다.
구두를 한 쪽 딲아도 불에 그을려보고 물을 묻여보는 사람과 항상 구두약만을 바르는 사람의 광택은 다르다.
당신이 부자를 꿈꾸는 것은 바로 보유한 자산이 일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등이 되는 과정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해 온 일들을 답습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것을 배워서 익히면 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재테크 역시 나만의 철학과 노하우를 확립하고 그것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면서 세상의 변화에 끄임없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다.
앞선 사람은 소속원의 관점과 리더의 관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작은 집단에서 리더가 되면 그 집단을 지휘하는 안목을 가진다.
그러나 당신은 더 큰 조직의 일원일 뿐이다. 그러면 당신은 다시 더 큰 교집합의 리더가 되기위해 노력해야하고, 다시 그 조직에서 리더가 되면 또 그것을 포함하는 집단의 리더가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한다.
도전이 멈추는 순간 그것은 정점에 이른다. 재테크는 과정의 결과일 뿐 목표가 아니다.
리더가 되기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안목을 기르는 것이고, 그러기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발전하기위한 가장 큰 바탕은 옳은 판단이고, 옳은 판단은 탁월한 안목을 필요로한다. 안목은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그런면에서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철학적이다.
당신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재해석된다.
모든 사람이 무심코 지나는 태종대 자갈밭에서 수백만원짜리 수석을 캐는 사람이 있고, 공원을 걷다가 이름모를 들풀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그것을 잡초로 알고 스쳐가는 사람과는 다르다.
당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길거리를 지나다가 들리는 모차르트의 선율에 가슴저린 감동을 받을것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당신의 귀는 소음에 시달렸을 뿐이다.
같은 사물을 두고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그것을 해석하고 교감하는 당신의 뇌는 스스로에게 더 나은 발전을 요구한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
당신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사물의 형상에 자극받고 당신의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그과정에서 당신은 세상을 푸는 지혜를 발견한다. 예술가가 작품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영감을 포착 해 본 경험이 있는가?
베토벤이 신을 향해 절규하던 그 마음이 9 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느껴지는가? 무용처럼 말한마디 대사하나 없는 몸짓을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 할 수 있는가? 현대미술관 앞뜰에 놓인 설치미술에게서 당신은 그것을 만든이의 영감을 떠 올려 본일이 있는가?
당신이 그것을 이해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작품이지만, 당신이 지나치면 그것은 고철덩어리다, 당신이 소리를 듣고 작곡가와 연주자의 영감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언어라는 교착된 수단을 벗어나서도 타인과 교류 할 수 있다.
사람의 표정을 보자, 웃는사람, 우는 사람, 아픈 사람, 괴로운 사람이 보인다.
그것은 당신이 자주 접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지만 당신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의 이해가 가능한가? 누군가가 몸짓으로 혹은 눈빛으로 당신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하는지 당신은 알 수 있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이성에게 고백을 하고 싶다면 당신의 그의 혹은 그녀의 표정에서 눈빛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는가?
굳이 고식적인 언어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소리나 색깔로, 혹은 격식과 문법이 사라진 시어에서 말하고자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의 오감은 살아 있다, 당신의 오감을 일깨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신이 길을 가다가 발바닥으로 전달되어지는 땅의 느낌을 느끼는가?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서 당신의 엉덩이가 닿아 있는 그 느낌을 이 글을 보지 않고서도 항상 느낄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뺨을 스치는 공기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 할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오감은 어떠한가?
어느새 당신은 그것들을 전부 활용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단순화된 수단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당신의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폐를거쳐 동맥을 타고 손가락마디 발끝까지 흐르는 그 살아 있는 느낌을 당신은 느낄 수 있는가?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것, 내 손에 만져지는 것, 당신이 사물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경로는 혹시 그것이 전부가 아닌가? 보이지 않는것, 들리지 않는 것, 만져지지 않는 것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는가?
당신이 주식투자자라면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컴퓨터 화면너머로 빨간 파란색의 주가챠트 말고, 그 너머에 그것을 보고 한숨짓고 박수치는 다른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당신이 지금 사기위해 돌아보고 있는 그 땅을 보고 단순히 개발계획이나 입지조건외에 그 땅이 전하는 가능성이 보이는가?
통찰적 사고를 하기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지금과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
예전에 당신이 보고듣고 만져보고 판단했다면 이제는 느끼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라, 그러기위해서 당신은 당장 이순간부터 달라져야한다.
하루에 잠은 여덟시간 이상을 자는 것이 좋다는 망발을 잊어버려라. 지금부터 당신은 당신의 삶을 관리하고 자신을 단련할 준비를 시작하라.
그 방식은 무엇이라도 좋다, 지금 당장 맨발로 땅위를 걷는 운동을 시작해도 좋고, 모차르트 전집을 사서 그것을 다 외울 때까지, 그것이 소음이 아닌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고 오르가즘을 느낄 때까지 그것만 들어도 좋고, 황동규의 시집을 사서 “풍장”을 소리내서 외워도 좋다.
아니면 곰브리치의 미술사를, 힐드베르거의 철학사를 집어들고 이를 악물고 읽어 내려도 좋다.
그냥 지금과 달라지면 된다.
내일은 오늘과 달라지고 모레는 내일과 달라지면 된다.
거리를 걸으면서 공기를 맛나게 먹는 먹는 연습도하고 물을 한잔 마셔도 꼭꼭 씹어 먹어도 좋다.
당신의 죽어 있는 오감을 살리기 위해 지금부터 당신은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한가지 씩만 돌파하라.
책을 읽는 것이 싫다면 철학사를, 음악을 듣는 것이 싫다면 말러를, 그림이 싫다면 피카소와 맞서라. 그저 당신의 오감을 편안하게 하는 일들을 하나씩 주변에서 치워나가라.
그것이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들어가자.
당신이 일년만 그런 도전을 한다면 그 도전의 결과 예전에 당신이 관심이 없었던, 혹은 싫기까지 했던 무엇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어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새로운 지식에 대해 당신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놀라운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어느날 아침에 굴드의 골드베르거를 들으며 일어나는 당신을, 베갯머리에 읽다 그대로 잠든 데리다의 해체에, 당신의 거실에 걸려있는 리히터의 그림에 스스로 놀라고 변화한 자신에 대해 당황해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일에 도전하라.
그것도 당신이 가장 하기 싫었던 순서대로 시작하라, 영어 회화를 선택하던, 중국어를 배우던, 가게에 한시간 일찍 나가 유리창을 딲던, 당신이 싫은 순서대로 당신의 일에서 중요하지만 미루어야 했던 그리고 가장 하기 싫었던 일부터 먼저 도전하라.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다시 그 다음으로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골라 뛰어들어라.
그러면 당신은 어느새 수십년을 선방에 들어 화두를 들고 앉은 스님네보다 맑은 정신과 판단의 소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스님들이 선방에 들어 참선을 하는 것을 한번 지켜보라.
왜 그분들이 굳이 장좌불와 동구불출을 감행하고,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생사를 건 수행을 하겠는가?
그들이 깨닿고자하는 이치를 공부하는데 왜 책을 불사르고, 결가부좌를 틀고 평생을 씨름하겠는가?
그들이 책에서 답을 얻을 수있다면, 혹은 선배들의 가르침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과정이 왜 필요하며, 굳이 사색이 중요하다면 사우나를 하고 편안한 안마의자에 앉아 명상에 들면 그만이자 굳이 다리관절이 망가지도록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행을 택하겠는가?
깨달음이란 혹은 통찰이란 목숨을 건 수행과 불가능에의 도전속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장 손쉬운 수단을 선택하려는 순간 당신에게서 성공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질 뿐이다.
돈을 벌고 싶은가?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필자의 책을 비롯한 돈을 벌게 해준다는 그 수많은 쪽집게 책들부터 마당에 내어 불사르라, 주식에서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당신의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증권방송 채널부터 망치로 부숴버려라.
통찰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것이다.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스스로를 개발 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바로 통찰이다.
당신이 진정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
2006/07/23 시골의사
[출처]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작성자 시골의사